<늦은 새벽> 늦은 새벽 3시 35분 언제나처럼 빈민가의 집들은 시끄러운 삭막함을 준다. 이제 설날의 끝자락인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데 찾아오는 이는 한 명도 없고, 따뜻하게 몰아치는 추위가 몸을 서럽게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을 한 지도 4년이 넘어가는 장 씨 아저씨의 아들 역시 그런 장 씨를 잊은 듯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전날 밤부터 술을...
<이른 새벽> 이른 새벽, 늦은 밤이라기도 애매한 새벽 3시 35분 빈민가의 집 언저리는 듬뻑듬뻑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주택촌이라도 불리기도 하는 빈민촌은 말이 좋아야 주택촌이지 지붕은 회색빛이고, 높은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오르는 이곳은 주택촌보다는 빈민촌이란 말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여기, 빈민촌은...
-48- 유은이 기다리진 않았지만, 마아가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축시(1-3)에. 콕 집어 반각에 올지, 일각에 올지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기에, 마아가 따라주는 잎 차를 마시며 마아의 옆에 앉아있던 유은은 점차 축시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과 함께 옅게 올라오는 심장 언저리의 고통에 몸을 살짝 웅크린 채 인상을 썼다. 심장...
-47- 다정하면서도 짓궂고, 그러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짧은 시간 동안 유은이 마아에게 느낀 감정이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바쁜 업무와 사사건건 모든 걸 관여하는 대신들로 인해 단궁에 모습조차 비추지 못하는 이였지만, 마아와 얼마나 많은 밤을 함께 하였던가.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혼례가 다가오는 기간 동안 만난 횟수를 해아려 본...
-46- 이제 막 묘시에 (5-7)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단이는 말이나 매나 독수리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도착한 사성의 끝자락에 멈춰서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곧 황제와 연을 맺을 이가 묵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일까. 이제 한 시진 후엔 인간들이 일어날 시간이니, 그 안에 아이가 있을 곳을 찾아내야 했다. “황제의 부인이 될 곳이라면..” ...
-45-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유은은 새하얀 자신의 나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몸에 새겨졌던 붉은 글씨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할 지경인데, 그에 비해 스며든 그것들은 애초에 몸에 닿지라도 않은 것 마냥 티 하나 나지 않는다. 주옥이 행한 주술은 주옥이 말해준바 금기라고 칭했던 주술이었다. 금기는 위험하고 몹쓸 것이기에 금한 것이며, 이미 백나...
-44- 분홍 벚꽃잎이 날리며 차가운 공기도 조금은 따스해졌을 무렵인 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빠르게 흐른 시간은 단이와의 이별을 잊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그리워하며 벌써 4년이 흘렀다. 평생 자라지 않을 줄 알았던 유은의 키는 이미 하나유키내의 여성들보다는 컸으며, 신장이 170을 웃도는 주옥과 5센티 여의 차이가 날 때 즈음에야 성장이 멈췄다. 볼록...
-43- 남평의 하늘은 푸르렀다. 역병도 없고, 장터에 모여 시끌벅적한 소리 들리고, 지나가는 이 돌아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 해화국과 별다를 게 없는 이곳은 그래도 남평이었다. 나라치고 크기는 작지만, 땅이 고르고 토양이 기름져 농사가 풍족히 잘 이루어지는 곳, 비쩍 마른 이들보다는 얼굴이 반지르르하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자...
-42- “어찌할 텐가?” 단이는 애초에 말산은 도적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패물을 주고, 더 좋은 걸 준다 한들,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가 이 산을 넘게 해주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단이는 결국 한숨을 뱉어내다 찌푸린 인상을 피려 미간을 꾹꾹 누를 뿐이다. “방법이 없잖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걸 그저 따라야지요.” 아이를 안고 ...
-41- “이제야 오시는가?” 이른 아침, 진시(7-9)의 끝자락을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먼 길 떠나는지라, 아이 신을 것, 아이 먹을 것, 아이 입을 것 적당히 사 보자기 싸매고 오니, 기다렸단 듯 곰방대 물고 약초 피우는 이준복 영감이 껄껄 호쾌한 웃음을 흘렸다. “스승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인사 올리곤 안부 건네는 유은의 옆에 앉은 단이가 여전...
-40- 아이는 점차 자라났다. 7살이던 아이가 13살이 되었으니, 시간이 참 무색할 만큼 빠르리오. 엊그제만 해도 밤송이 따러 가자, 두릅 따먹자. 앵앵대던 게 조금 커졌다고 울지도 않고,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성격이 달라진 건 아니었으니, 조용한 표정으로 ‘단아, 단아’하는 얼굴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몇 년 전 어리숙한 그 얼굴 떠올라 또 ...
-39- 이준복 영감은 5년 만에 또 한 번 산길에서 길을 잃었다. 5년 전 해괴망측한 일을 겪은 뒤로 다시는 산을 오르지 않겠다. 호언장담을 했건만, 어찌 산을 오르지 않을 수 있으리오. 당장 옆 마을에 가기만 하더라도 산을 넘어야 하고, 달에 한 번 하는 모임 또한 산 중턱에 위치한 정자에 모이는 것인데. 마음과는 다르게 5년 내내 산길을 오갔던 이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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