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단이와 반룡의 예상대로 아이. 유은이는 한동안 밖으로 나오기를 극도로 꺼리며, 단이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잠시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에 가면 치맛자락을 쥐고선 졸졸 쫓아오고, 유은이 잠든 새벽에 몰래 대나무 숲에 다녀오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 자지러지게 울어 젖히는데, 심지어는 측간에 가는 것조차 거부하는 행동에 단이는 골머리를 앓...
-37- 음기가 가득한 귀신들이 있는 대나무 숲에 버려진 아이.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멀쩡한 아이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유은은 특이한 경우였다. 아니, 오히려 특출난다고 할 수 있겠지. 단이는 아이의 기가 강하다 눈치챈 것은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아이 때부터 기가 느껴졌기에, 어느 정도는 강단이 된다고 하고 대충 넘겨 버렸던 것이 이리되었...
-36- 흐린 안개가 끼어있는 이른 새벽 ‘자르륵, 자르륵’ 듣기 싫은 불쾌한 소리에 늦은 산길을 걸어 내려가던 ‘이준복’ 영감은 킁 콧김을 내뿜었다. 그저 날이 좋아 마실을 나간 참에 내 나이 47년 평생 앞뜰처럼 나다니던 곳에서 길을 잃을 줄이야. 에잇 쯧쯧. 뒤늦게서야 길을 찾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 답지 않게 겁을 먹으면서도 허...
-35-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 유은은 아냐를 뒤로 한 채 저택을 나섰다. 혹시라도 이 저택을 감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렇다면, 사야 할 것들도 있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묶어주던 아냐에게 금방 돌아오겠다 약속을 한 유은은 부러 아무렇지 않게 저택을 나선 것이었다. 유은이 걸음을...
-34- 상처는 컸고 낫는 속도는 더뎠다. 그래도 누군가의 지극정성인 관리하에 어느 정도는 상처가 아물어 지고 있을 무렵, 유은은 침대에 기대어 앉을 수 있었고, 일어날 수 있었고, 이제는 뛰지는 못하더라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계단을 내려가기만 해도 안절부절못하는 누군가로 인해서 아직은 밖에 나갈 수 없었지만, 아냐의 호의로 매일 안부 겸 찾아오는 제이...
-33- 유은은 간만의 휴식을 얻었다. 공부하고, 배우고, 외우고를 반복한 지 66일째 되던 날이었다. 처음 일주일여 동안은 피곤함에 시름시름 앓던 유은은 금방 배움에 익숙해졌고, 아냐의 옆에 척하고 달라붙어 공부를 하는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간혹가다 아냐 몰래 보스와 만나 잡일을 하고 돌아오던 때도 있었지만, 아냐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
-32- 아냐는 김이 샜다. 그래 어린아이 가지고 내가 뭘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실상 어떻게 보면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고..욕실로 들어가자마자 붉어진 얼굴로 땅만 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죄짓는 느낌이 몰려와 결국 건전하게 목욕만 했으니 속이 조금 끓어오른다 이 말이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파자마를 입고선 옆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편한 자세...
-31- 문제의 상처들이 낫는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동안 철저한 아냐의 감시하에 침대 속에만 틀어박혀 있던 유은은 상처가 낫는 즉시 바깥으로 나가 자연의 공기를 듬뿍 들이마실 수 있었다. 앞으로는 조심 좀 하자고 말하며 폴짝거리는 유은에게 외출용 코트를 입혀주던 아냐는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는 유은의 모습에 한껏 맑은 미소를 지어주...
-30- 오늘은 구청에 가는 날이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 목록을 준비하여 가방에 넣은 유은은 아냐가 건네준 모자를 꾸욱 눌러쓴 뒤에야 품 안에 고이 들어있는 돈주머니의 무거움을 느꼈다. 드디어 오늘이었다. 새로운 신분을 얻는 날. 떨리는 기분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더군다나 이런 날은 좀도둑이 많은 날이었다. 돈을 잃어버리면 큰일이기도...
-29- 아냐는 생각보다 상냥한 사람이었다. 웃을 때 유순하고 상냥해 보이지만 그런 상냥함이 아니었다. 몸에서 묻어나오는 자상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항상 대접해 주는 달콤한 케이크와 쿠키, 그리고 시원한 우유나 혹은 설탕을 붓고 데워온 따뜻한 우유를 주어서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냐는 저택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였다. 그것의 대부분은 절...
-28- 졸리다. 절로 하품이 나왔다. 여과 없이 더더욱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길게 하품을 내뱉은 유은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는 푸욱 베개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졸리면 자야지. 답은 명확했기에 눈을 감은 유은이 색색 고른 숨을 내쉬었다. 화연의 냄새. 묘하게 야한 향이다. 쩝. 중독된 것 마냥 입맛을 다신 유은이 “화연-” 하고 야한 체취를 가...
-27- (시즌 2) 마음이 편안하다. 눈을 뜨고 싶지가 않을 만큼 몸은 나른했고, 발끝이 가벼웠다. 더군다나 몸 위로 살랑거리듯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가 마치 날 감싸고 있는 것 같았기에 선잠에 들거나, 마음 속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태함을 즐기던 유은은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병들고 약해있던 몸이 솜털처럼 가볍고 아프지가 않았기에 더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